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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6호] “정부는 소비자 권익 위주로 융합정책 수립하라”

(과실연 성명서 제6호)
방송-통신 융합 갈등에 대한 과실연의 입장

“정부는 소비자 권익 위주로 융합정책 수립하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방송, 통신과 인터넷 서비스가 상호 융합된 형태로 제공되는 것은 이 시대의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는 그 바탕이 되는 IT산업을 차세대 국가 산업을 견인할 성장 동력으로 삼고 집중 육성해왔으며, 그 결실로서 초고속 인터넷, 휴대 전화, 디지털멀티미디어 방송(DMB), 휴대 인터넷(WiBro) 등에 있어서 세계적인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IT산업의 발달은 국민 생활 문화를 크게 변화시켜, 정보 취득의 형태를 매우 다양하게 해주었고, 특히 청소년층의 경우 대부분의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취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대적, 문화적 변화와 IT기술 및 산업에 있어서의 선도적인 입지 확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방송, 통신, 인터넷 융합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 매우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국민의 자유로운 정보 선택권과 IT산업의 세계적 도약 기회를 희생시켜왔다. 그 원인이 전통적인 방송과 통신 사업에 대한 영역 다툼,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의 주도권 다툼, 그리고 정부의 조정 능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을 볼 때,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IT분야에서 인근 분야와의 대립과 정부의 조정능력 부족 때문에 예산 낭비, 기술 발전 저해, 사용자 서비스 지연을 초래한 것이 한 두 차례가 아니다. 90년대 중반에는 방송위성을 쏘아 올리고도 법제도를 정비하지 못해 8년 동안 우주공간에서 떠돌며 수명이 다하도록 방치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디지털TV 기술 표준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수년간 시간을 낭비하면서 TV 기술 발전을 저해했다. 지난해에는 DMB 서비스 도입에 있어서 사업체간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하지 못하고 서비스를 지연시켰다. 지금은 IP-TV, 이동방송, 데이터방송 등 융합형 서비스들의 도입을 앞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이런 현상은 방송과 통신업체 간의 이해 대립,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 간의 주도권 다툼, 그리고 정부의 조정능력 부족에 기인한 것이다. 사업체들의 이권 대립이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의 대리전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국가 IT산업 발달과 국민의 자유로운 정보 취득권, 즉 소비자가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희생시켜온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정부는 소비자 권익을 중시하는 발전적, 미래 지향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산업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에 대한 균형 잡힌 조정 능력을 발휘하여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과실연은 정보, 통신, 방송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국가 산업 성장의 동력을 만들고 국민들이 편리한 정보 취득 수단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연구, 제시할 것이다. 이와 함께, 과실연은 정부가 시대적인 변화를 적극 수용하여 소비자 권익 위주로 미래 지향적인 방송-통신 융합 정책을 시급히 수립하고, 균형 잡힌, 그러나 단호한, 조정 능력을 발휘해서 해묵은 이권 싸움과 주도권 다툼을 종식시켜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06. 2. 10.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이덕환 칼럼] 황우석 박사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

아래 칼럼은 과실연 집행위원인 이덕환교수(서강대)가 최근 사이언스타임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황우석 박사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과학계와 네티즌의 의견이 크게 다르다고 한다. 과학의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학문적 범죄’에 해당하는 논문 조작의 당사자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과학계의 입장은 분명하고 확고하다.

그러나 황 박사에게 열광하는 네티즌들은 ‘국익’을 위해 그 정도의 잘못은 눈감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지난 한 달 사이에 ‘황우석 교수 후원회’의 회원이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한다. 황 박사의 감상적인 기자회견이 뜻밖의 영향력을 발휘한 셈이다.

물론 난치병 치료와 엄청난 국익이 곧바로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던 네티즌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가 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윤리적으로 완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저지른 비리는 이보다 훨씬 더 부도덕하고 반인륜적인 경우도 많았다. 외환위기처럼 우리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낯선 생명 윤리와 연구 윤리나 힘센 국가가 주장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어설픈 명분에 매달리기보다는 눈 한 번 질끈 감고 실리를 챙기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처세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치열한 기술 개발 현장에서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거짓말이 용납될 수 있고, 황 박사가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일 수도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우리 과학계는 스스로 논문 조작 사실을 인정한 황 박사가 스스로 물러나야만 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것이 세계 과학계의 확고한 관행이기 때문이다. 황 박사가 처음부터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더라면 사정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세계 과학계의 검증 시스템을 통해서 자신의 결과를 인정받으려 했던 것은 온전히 황 박사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그런 결정은 황 박사가 세계 과학계의 관행에 따른 책임도 유감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단 것만 삼키고, 쓴 것은 뱉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학술 논문을 조작해서 전 세계의 과학자를 속이려 했던 학문적 범죄 행위에 대한 세계 과학계의 관행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과학계에서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질적인 사법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세계 과학계가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다.

만약 우리 과학계가 우리만의 ‘국익’을 위해서 분명하게 확립된 과학계의 관행을 무시한다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진다. 우리 과학계 전체가 세계에서 ‘퇴출’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 과학계 모두가 황 박사의 의도적인 논문 조작의 공범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세계 과학계가 의도적인 논문 조작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런 조작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주장을 검증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새로운 결과를 얻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모자란 자원과 노력을 그런 헛된 일에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다.

더욱이 현대 과학의 영향력은 상상을 넘어선다. 자칫 의도적인 거짓말이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거짓말 때문에 과학계의 신뢰에 금이 가게 되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 된다. 과학계가 논문 조작을 특별히 엄격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황 박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내부의 문제도 있다. 황 박사가 투명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우리의 노력과는 반대로 어두운 정과(政科) 유착의 선례를 만들어낸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황 박사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집중 지원과 인위적인 영웅 만들기는 ‘황금박쥐’로 알려진 몇 사람의 밀실 담합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동안 우리 과학계와 정부가 애써 구축해놓은 연구 지원 절차는 완전히 무시되어 버렸다. 그런 유착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연구원들까지 동원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된 정치권과의 부당한 유착이 결국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하는 불행한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업이나 언론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계의 경우에는 막대한 예산을 이용해서 미래 사회의 생존에 필요한 성장 동력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의 투명하고 합리적인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정부와 부당한 유착 관계로 이익을 얻은 기업가나 언론인을 퇴출시키는 것이 당연하듯이, 그런 관계로 온 국민을 수치스럽게 만든 황 박사도 무거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만약 국익을 핑계로 황 박사의 그런 잘못이 용납된다면 우리 과학계는 어두운 유착과 더러운 음모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황 박사가 개발한 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정직하지 못했던 황 박사를 믿었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고, 황 박사가 개발한 기술은 결코 황 박사 개인의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 박사가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온전하게 우리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백의종군(白衣從軍)이라도 해야만 한다. 정말 아무 죄도 없는 학생들을 앞세워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해보려는 얄팍한 행동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과학은 과학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고 싶다. 과학은 우리의 꿈이나 희망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과학 연구의 결과가 국민의 여론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과학은 오로지 정직하고 성실한 과학자의 끈질긴 노력과 남다른 창의력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다. 과학계의 냉정한 판단을 믿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확인할 수 없는 ‘국익’에 눈이 멀어서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동대학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교수이자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실무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2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저술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제5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과학대중화를 위한 과학문화 확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이 교수의 칼럼은 각종 언론매체에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