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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칼럼] 과학재단과 학술진흥재단, 특화시켜야

[DT 시론] 과학재단과 학술진흥재단, 특화시켜야

디지털타임스  기사전송 2008-03-25 08:06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주임교수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술진흥재단(학진)과 과학재단을 개편하겠다는 소식이다. `국가장학재단’을 설립해서 교육을 살리고, 미국의 과학재단(NSF)을 모델로 한 `국가학술연구재단’을 만들어서 과학기술강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수행되는 학술연구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근거로 제안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선 미국의 과학재단이 우리 학진처럼 인문사회와 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를 지원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교육과기부가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 지원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뜻인지 정말 알고 싶다.

실제로 교육과기부의 국정과제 실행계획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문화예술은 `즐거운 학교 만들기’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교육 살리기’와 `과학기술강국 건설’ 사이에서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대학교육과 학술연구는 실종이 돼버렸다.

물론 정부가 대학에서 수행하는 인문사회와 문화예술 분야의 교육과 연구에 대한 지원을 외면할 수는 없다. 진정한 선진국 진입은 과학기술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위기도 극복해야 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연구의 목적이나 성과의 성격부터 그렇다.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는 우리 스스로의 전통이나 가치관과 밀접하게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사상, 이념, 문화, 전통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는 훨씬 더 보편적, 객관적이다. 우리의 전통이나 가치관보다는 경제성이 더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학술연구의 지원에서도 그런 차이가 분명하게 반영되어야만 한다. 지원사업의 기획에서 과제의 선정, 지원의 규모와 관리, 성과와 인력의 활용이 모두 차별화 되어야 한다. 그런 차이를 무시한 지원은 잘못된 처방처럼 학술연구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통합 관리에 의한 시너지를 너무 강조하는 것이 자칫 불필요한 위험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특히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가 그렇다.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합리적인 지원과 지나친 간섭이나 통제의 경계가 명백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학문의 자유와 다양성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 사상과 이념과 종교의 자유도 위험해질 수도 있다.

공연한 걱정이 아니다. 만약 과학기술 분야에서 효율성을 핑계로 도입한 `선택과 집중’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로 확산되면 정말 위험해진다. 어떤 철학과 역사 분야의 연구과제를 어떻게 선택해서 지원할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자칫하면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구하는 `코드’를 강요하는 결과가 돼버린다.

이미 우리는 그런 경험을 너무 많이 했다.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철저하게 정권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선택과 집중에 의한 것이었다. 그 폐해에 대해서는 굳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우리가 그런 어리석은 오류를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구의 선진국들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지원을 민간에게 맡겨두는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 물론 민간의 역량이 부족한 우리가 선진국 흉내를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과도한 지원이 곧 정부에 의한 획일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설사 정부가 그런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학술연구의 지원은 분야별 특성에 따라 이원화해야 한다. 연구자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분야와 국가 차원에서의 기획과 조정이 필요한 분야로 구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결국 학진과 과학재단을 무작정 해체하거나 통합하기보다는 특화시켜야 한다.

학진은 객관적인 효율 평가가 어려운 인문사회와 핵심 기초과학 분야의 지원과 장학 사업을 포함한 기본적인 연구기반 확충에 노력해야 한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재단은 적절한 수준의 선택과 집중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무리한 통합이 불필요한 분야간 갈등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BK사업과 같은 형식의 장학사업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덕환 칼럼] 학진과 과학재단 개편은 신중하게

학진과 과학재단 개편은 신중하게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129)
2008년 03월 27일(목)

과학문화 확대경 정부가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을 ‘국가장학재단’과 ‘국가학술연구재단’으로 개편할 계획이라고 한다. 과학기술부에 이어 과학재단과 학진까지 개편되면 지금까지의 과학기술행정체제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런 개편으로 대학의 연구 역량이 강화될 것인지에 대해 좀더 충분한 검토와 의견 수렴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과학기술 행정체제의 개편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통합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선 대학의 학술연구를 ‘과학기술강국 건설’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경계를 해야 할 것이다. 새로 만들어질 국가학술연구재단을 과학기술 분야의 학술연구만 지원하고 있는 미국과학재단(NSF)을 모델로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미국과학재단모델에서는 대학에서 수행하고 있는 인문사회와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은 어떻게 할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한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직에 그런 기능을 가진 부서가 있는지 분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 역량 강화가 중요하지만, 인문사회와 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에 대한 지원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새로 만든다는 ‘국가장학재단’의 기능도 모호하다. 현재 대학생에게 지급하고 있는 장학금규모로는 별도의 장학재단을 만들 이유가 없다. 만약 장학금 규모를 장학재단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늘일 예정이라면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목적으로 예산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대학 등록금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고,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없다면 등록금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장학금으로 사용할 예산이 있다면, 그것을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억제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국가학술연구재단의 성격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과학재단을 모델로 하겠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학진과 과학재단이 모두 대학학술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기관이 기능적으로 확실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학진은 대학에서 이뤄지는 모든 분야의 학술연구에 필요한 기반을 구축하는 사업을 담당하고, 과학재단은 엄청난 예산 지원이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와 개발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왔다. 명목상의 공통점만을 근거로 통합을 하는 것보다 기능적 특성을 강화해서 특화시키는 것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평가 절하해서도 안 될 것이다. 과학 경쟁력 세계 7위와 기술 경쟁력 세계 5위의 성과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물론 현재 과학재단과 학진이 가장 이상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개선의 여지가 있고,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도 중요한 가치

이미 지적했듯이 대학의 학술연구는 과학기술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인문사회와 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 지원을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민간에게 맡겨두고 있다. 선진국들이 인문사회와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에 직접 나서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회의 역사, 전통, 문화, 사상,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술연구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나 통제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자칫 학문, 사상, 이념,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간역량이 충분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 정부가 인문사회와 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 지원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분야의 지원에서도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처럼 ‘선택과 집중’을 원칙으로 삼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선택적 지원에 의한 학문과 사상과 이념의 자유 침해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인문사회학자들이 오히려 달콤한 BK와 HK의 유혹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가학술연구재단은 과학기술 분야에게도 몇 가지 문제를 노정할 수 있다. 개인연구 지원은 학진에서 담당한다는 원칙에 따라 과학재단에서 학진으로 이관된 사업의 예산 중 상당부분이 인문사회 분야로 넘어갔다. 새로 만들어질 학술연구재단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국가학술연구재단은 과학기술 분야와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학자들이 서로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한 소모적인 경쟁을 야기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우리 사회의 ‘두 문화 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현대 사회가 절실하게 요구하는 학문의 통합이나 융합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학문과 사상의 자유나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 또한 중요한 가치이다. 학진과 과학재단의 기능적 특화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때이다.

[성명서 23호]“한반도 운하 ‘검증’부터 먼저 하라”

 

과실연

날짜

 2008. 3. 21

연락처

 과실연 사무국 02-501-9825~4

135-703 서울 강남구 역삼동 635-4 과학기술회관 본관806호 www.feelsci.org fax:02-501-2643

“한반도 운하 ‘검증’부터 먼저하라”

– ‘세계 물의 날’(3.22)에 즈음한 과실연 성명서-

새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함에 있어  “국민 여론을 수렴한 뒤 모든 절차를 밟아 추진할 것”(2008년 1월 14일 당선인 신년기자회견)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우리는 지난 대선기간 동안 각종 사건에 함몰되어 대선 공약에 대한 검증다운 검증을 하지 못했기에 대통령의 이와 같은 언급을 환영하고 실천여부를 주시해 왔다.

 

 

그러나 최근 흐름을 보면 정부 여당은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고 대부분의 건설회사와 지자체는 연내 착공 및 대통령 임기 내 완공을 기정사실화 하여 이미 각종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천명한 국민 여론 수렴과 검증절차가 사업 추진을 위한 요식행위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국이 길이 122km 밖에 안 되는 미시시피강 MR.GO(Mississippi River-Gulf Outlet) 운하를 건설하는데 10여년의 기간이 걸렸고 우리나라에서도 한탄강댐은 7년 이상의 찬반논란 끝에 작년에 착공된 사례가 있다. 길이 570km에 여러 개의 신규 댐과 10여개의 주운 보 건설이 필요한 한반도 운하를 건설하려면 국민적 합의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민족 생존의 뿌리이자 후손에게 길이 물려줄 국토에 ‘대수술’을 가하는 “한반도 운하 사업”이 전문가 집단의 철저한 검증 없이 졸속 추진되는 것을 경계하며,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1. 그동안 찬반토론에서도 보여주듯이 한반도 운하는 많은 사안에 걸쳐 전문가들의 이견이 대립하고 있다. 이것은 성공 여부가 매우 불투명하고 불확실함을 방증한다. 설사 대통령이 제시한 공약이라 할지라도 원점에서 재검토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선공약은 ‘과학적’으로 다시 검증해야 한다. 이에 정부는 하루속히 “한반도 운하 검증위원회(가칭)”를 전문가들로 균형 있게 구성하여 운하건설에 앞서 검증작업부터 해야 한다.
2. 검증이 진행되는 동안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수렴하여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한반도 운하 사업을 “민자”로 추진하겠다면서 앞으로 발생할 모든 민원의 해결을 건설회사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마땅히 정부의 책무이며, 정부가 국민의 민원을 해결한 후 시공사를 결정하는 정당한 수순을 밟아야 한다. 운하 건설을 위한 지침서 하나 마련되어 있지 못한 현실에서 “민자”로 포장하여 건설회사들에게 넘겨준다면 정부가 바라는 국민적 합의는 요원해진 채 우리 사회는 또 한번의 커다란 국론 분열과 후유증을 겪을 것이다.

 

 

2008. 3. 21.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과실연)
▣ 관련문의 :   과실연 사무국 02-501-9825~4

[성명서 22호]“과학기술계에 비례대표 20% 배정하라” 의견서

과실연

날짜

 2008. 3. 17

연락처

 과실연 사무국 02-501-9825~4

135-703 서울 강남구 역삼동 635-4 과학기술회관 본관806호 www.feelsci.org fax:02-501-2643

“과학기술계에 비례대표 20% 배정하라”

– 과실연이 여야 각 정당에게 보내는 의견서 –

 

우리나라는 특별한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 역사상 예가 드문 경제적인 성과를 이루어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국가적으로 장래를 선도할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를 선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오늘날 우리가 가진 경쟁력의 원동력이었다. 첨단 산업생산을 통한 수출주도형의 국가 정책은 우수한 인재들을 과학기술분야로 이끌었고 이들로 인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환경 건강 등의 분야를 국가경쟁력 강화의 핵심주제로 선정하여 이에 대한 인적 물적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에 대한 선도적이고 지속적인 역량을 보유하여야 이들 국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지난날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틈새 공간에서 비교적 쉽게 경제발전을 하였으나 지금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유리한 틈새가 없으며 시공을 초월하여 어느 나라와도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이것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와 정책적인 지원이 더욱 치밀하게 계획되고 집행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적용은 비단 과학기술, 정보통신,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외교, 국방, 농수산, 해양,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과학기술 지식기반 시대에 부합하는 국가운영이 가능하려면 과학적인 사고를 갖춘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 국정 문제 전반에 걸쳐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오는 4월9일 총선을 통해 구성되는 18대 국회에는 과학기술인들이 많이 진출하여 과학적인 기조 위에서 새롭게 국정을 펼쳐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각 정당들은 전문 직능대표로 구성되는 비례대표 의원을 선정할 때 과학기술인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우리나라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이미 연간 10조원을 넘어섰다.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부와 함께 국회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과학기술분야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므로 이에 대한 입법 지원은 관련 분야의 전문인들이 취급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같이 국가의 총생산에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막대한 기여도를 고려하여,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선정할 때 과학기술분야에 최소한 20%는 배정해야 한다.

 

우리는 과학기술인들의 국회진출이 과학기술분야를 위한 특혜가 아니며, 시대 변화에 부합하도록 국회 운영을 쇄신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조치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여야 각 정당들은 비례대표제 국회의원으로 과학기술인 공천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

 

2008. 3. 17.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과실연)

▣ 관련문의 :   과실연 사무국 02-501-9825~4

[김영오 칼럼] 내가 한반도 운하 연구를 중단한 이유

[기고] 내가 한반도 운하 연구를 중단한 이유
학제간 연구 절대적으로 필요 ‘국민적 합의’ 요식 행위는 안돼

김영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2008.03.11 조선일보
한반도 운하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귀동냥으로 들어왔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제 앞가림하기에도 바빴던지라 들여다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야고보 1장 19절)는 거창한 이유라기보다는 운하에 관한 지식이 미천하여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운하에 관해 질문이라도 하면 그저 얼버무리다 말았고, 언론에 나와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하는 동료 전문가들을 보면 그들의 확신이 부러웠다.
그러다 작년 한나라당 경선이 한창일 무렵, “공부 좀 해 봐야 알겠는데요”라는 후안무치의 답변으로는 도저히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무렵부터 관련 자료를 틈틈이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이제 찬반의 논리가 무언지 대충이나마 알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토론 등을 통해 반대 의견이 나오면 나올수록 찬성 쪽은 더욱 이론으로 중무장한다는 것이었다. 즉, 반대가 찬성을 도와주는 아이러니가 흥미로웠다. 반대 쪽은 개인적 관심에서 산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찬성 쪽은 대통령 당선이라는 목표 아래 체계적인 팀을 구성하여 불철주야로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2월에는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개최한 최초의 행사라 할 수 있는 ‘물 관련 전문학회 합동 한반도 대운하 학술회의’에 참석하였다. 여기서 난 드디어 더 이상 내 개인적인 호기심으로는 운하 연구를 계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현안들이 내 머릿속에서 소화가 안 될 정도로 포화되었기 때문이다. 저렇게까지 많은 사안을 누가, 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더불어, 어느 누구도 “내가 운하 전문가”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운하야말로 다학제(多學際, interdisciplinary)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며 나는 그 중 일부만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 물류, 건설, 수자원, 환경, 문화 등 각종 전문가들을 포괄하는 ‘한반도 운하 연구단’을 하루속히 국가 주도로 만들어 검증을 시작하여야 한다. 연구하는 데만 5년이 걸려도 할 수 없다.
연구와 검증이 진행되는 동안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몇 천억 원밖에(?) 안 되는 한탄강 댐도 7년 이상의 찬반 논란을 거쳐 작년에 겨우 착공되었다. 하물며 수 개의 신규 댐과 10여 개의 주운(舟運) 보(洑)가 필요한 조 단위 예산의 경부 ‘대(大)’운하를 시작함에 있어,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몇 년으로 예상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국내에 아직 운하 공사에 필요한 ‘지침서’ 하나 없는 실정에, 연내 착공이라든지 임기 내 완공 등의 정치적 욕심은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한다. 약 2000㎞에 이르는 미국 미시시피 운하시스템은 170여 년 전 주운이 시작되었으나 현재의 갑문은 1960년도에 완공되는 긴 여정을 거쳤다. 이 운하시스템 중 일명 ‘MR.GO(Mississippi River-Gulf Outlet)’ 운하는 경부운하 길이의 5분의 1인 122㎞밖에 안 되지만 1956년에 법령이 발효되어 1965년에 완공되었다.
대통령, 국무총리, 그리고 국토해양부 장관까지 모두 취임 일성으로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고 있는 뉴스는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사업 추진을 위한 무마용 요식 행위에 그친다면, 노무현 정부 때와는 또 다른 형태의 국론 양극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어떤 참신한 정책도 국론 분열을 딛고 실현될 수는 없다. 세계는 이미 참여를 요구하는 새로운 건설 문화 패러다임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