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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열 칼럼] ‘책’주고 ‘총알’받는 일 뒤풀이해서는 안돼

어수선한 광복63주년이 지나갔다. 마침 사는 곳이 국립현충원(서울 동작동) 뒤 쪽이라 틈나는 대로 현충원을 찾는데 이번 광복절에도 아침 운동 겸 올라갔다.

최근 현충원은 주민들을 위해 산 쪽에 3개의 쪽문을 만들어 주간에 이 곳을 드나들 수 있게 해 주어 나는 이를 잘 이용하는 편이다.

1955년 조성된 현충원은 16만5천여 순국선열과 유공자들의 위패가 모셔있는 나라의 성역이다. 이곳에 수시로 다녀도 감회가 새롭다. 아마 한 분 한 분 마다 남 모를 사연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틈틈이 유공자들의 비문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며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보곤 한다. 허나 대부분의 병사들은 묘석에 이름 뿐이어서 아쉽기도 하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명용사의 위패다. 대한독립군무명용사 위령탑에 서니 가슴이 아리다. 탑에는 독립군가 한 소절이 새겨져 있다.
“ 그리던 조상나라 다시 살리라, 그리던 자유꽃이 다시 피리라”
탑 끝에 둥근 벌통이 보인다. 지난해에도 달려있더니 올해도 새것이 지어져 있다.  무슨 관리를 이렇게 하나 항의하려다 마음을 바꿔 먹었다.  먼 이국 땅에서 한을 품고 돌아가신 이름없는 독립군이 벌이 되어 찾아 온 것은 아닐까?

국가유공자 제2 묘역에는 우리나라 첫 이학박사인 이태규 교수가 안장돼 있다. 그의 비명의 일부를 옮겨 본다.

「 나는 과학자이다. 그래서 나는 ‘예리한 관찰과 꾸준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게 되었으며 이 구절을 마음깊이 새기고 이 길로 걸어왔다. 그리고 결코 후회하거나 바꿀 의도는 없으며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로 걸어가겠다.」

그의 어록에서 옮겨온 글이라 하는데 우직한 과학자의 심지가 그대로 들어나는 것 같다.
아마 의학박사는 많겠지만 기초과학을 전공한 이학박사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유공자로 모셔 있는 것은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문득 지난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15~16년전 말레이시아에 국제행사가 있어 취재 차 나갔는데 일본과 동남아 각국의 기자들도 와 있었다. 저녁 식사장에서 동남아의 한 기자가 물었다. “왜 한국과 일본은 그토록 국민 감정이 안 좋은가? ” 나는 순간적인 오기로 이렇게 답했다. “ 우리는 책(BOOK)을 주었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총알(BULLET)로 돌려 주었다.”
그렇다. 일본은 과학기술(BULLET)을 일구어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침탈에 까지 이른 것이다. 결국 우리의 무명용사와 일제의 고문으로 돌아간 항일열사들의 피어린 고통은 과학기술이 없는 나라의 비극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비행기와 항공모함을 만들고 있을 때 우리는 찢어진 무명삼베에 찌들어 있었다.
과학기술의 인재들이 계속 길러지고 그들이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는 풍토가 자리 잡을 때 이런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커멓던 하늘이 현충원을 나올 때는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보인다.
과연 현충원의 영령은 지금 편히 쉬고 계실까?

(장재열 집행위원)

[곽재원 칼럼] 과학정책에 대통령 역량 쏟아라

[시론] 과학정책에 대통령 역량 쏟아라

 [중앙일보]8월 15일자 

이명박 정부가 임기 중 펼칠 과학기술정책이 12일 발표됐다. 2012년까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5% 늘려 7개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연구개발 시스템을 혁신해 과학기술 7대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과학기술기본계획 577 전략’이다.

GDP 5%는 정부 몫이 1.25%, 민간 몫이 3.75% 로 돼있다. 이를 달성하려면 정부는 매년 10.8%씩 과학기술 예산을 늘려야 하고, 민간은 이 기간 동안 35조원 이상을 추가 투자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여간 당찬 계획이 아니다. 현재의 재정환경으로 봐서 과기예산의 지속적인 두 자릿수 배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정부가 앞서 뛰는 민간에 매력 있는 연구개발 과제를 제시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과학기술기본계획은 국가의 미래 청사진으로 과학기술정책이 산업정책으로, 그리고 경제정책, 국가경쟁력 강화로 제대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목표가 달성된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범부서 장관들과 민간 전문가로 구성)가 최상위 국가계획으로서 이를 심의, 확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번에 발표된 기본계획에 국민들은 관심이 없다. 언론도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홍보 부족도 아니고 알맹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정책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정책에 최고통치권자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는 얘기다.

대단히 중요하고 장기적인 국가계획일수록 최고통치권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자산을 이 계획에 동원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핵심 역량인 철학과 의지·경험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980년대 현대건설 사장 시절 10년 가까이 원자력산업협회 부회장을 지내며 에너지 기술자립에 대해 공부했었다. 이어 현대자원개발과 현대종합목재 회장 때는 러시아 등지를 다니며 민간 자원외교를 펼쳤다. 서울시장 때는 정부가 지역균형 발전을 이유로 수도권 지역에 있는 이공계 대학 연구비를 중단하자 31억원밖에 안 됐던 서울시의 대학지원 예산을 일시에 1000억원으로 늘리기도 했다. 예컨대 이런 것이 이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핵심 역량이고 이런 암묵지를 과학기술정책에 담았을 때 정책은 힘이 붙는다.

지난 정부는 과학기술 중심국가를 표방하면서 과기 예산을 두 배까지 늘렸다. 또 ‘IT 839’ 정책을 통해 정보기술(IT) 강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권 후반으로 가면서 정책의지가 약해져 기대했던 벤처 중소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은 거의 성과 없이 끝났다. 이명박 정부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기초원천연구를 가장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기초연구비가 과기 예산의 25%에 불과하지만 2012년에는 전체의 50%까지 늘어난다. 주로 대학과 출연연구소에 지원되는 것이다. 석사학위 이상의 고급 인재 80% 이상이 이 분야에 몰려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합쳐졌기 때문에 인재 육성과 연구개발이 한 틀에서 이뤄지고, 그 성과가 사회에 환원되는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연구비 지원이 늘어난 만큼 국민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하는 것이다. 과기정책이 대학을 포함한 교육개혁과 맞물릴 때 정책의 효율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또 과기정책의 지역확산도 강화돼야 한다. 그동안 지역에 중구난방으로 생겨난 과학기술 관련 기관·단체·연구소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해 지역혁신을 이끌 지역밀착형 클러스터(집합체)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일은 IT를 연구개발과 전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IT 정책을 만들고 이를 과기정책과 결합시키는 일이다. ‘작고 현명한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을 지혜롭게 추진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곽재원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