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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오 칼럼] 지구온난화 적응도 중요하다

[시론] 지구온난화 적응도 중요하다 [중앙일보]

미국 코넬대학교가 위치한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 이타카에는 작지만 높은 수준의 지구과학박물관이 있다. 여러 개의 아담한 방으로 나누어진 박물관 내부에는 45억년의 지구 역사가 지구온도 그래프와 함께 연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수십억 년 동안 수없이 반복하며 오르내린 지구 온도의 거대한 사이클에 비하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의 150여 년은 찰나에 불과할 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가 반드시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 기체의 증가 때문만은 아니고 자연스러운 온도 사이클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든다.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가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즘, 온 세계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저감(mitigation) 대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도 있다는 바람과 열망으로 세계의 많은 학자·정치인·경제인, 그리고 시민들이 대응책을 연구·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인류가 노력하고 기대한 만큼 지구가 식어줄 것인가. 우리는 다시 이타카박물관의 거대한 지구온도 사이클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인류가 모든 지식과 기술을 짜내도 뜨거워지는 지구를 막지 못할 수 있다는 가설도 받아들이고 지구온난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마침 최근 출간된 『기후 혼란(Climate Confusion)』이란 책은 뜨거워지는 지구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다는 시각을 경고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현상은 관측자료가 말해주듯이 사실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원인을 전적으로 온실가스 증가에 있다는 가설을 과신해 온실가스 줄이기 외에 다른 준비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온난화에 대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준비가 바로 적응(adaptation) 대책이다. 상승하는 온도에 대비해 재배 품종을 바꾼다든지, 댐 운영 방식을 변경한다든지, 예방접종 시기를 앞당긴다든지 하는 것을 말한다.

적응 대책은 생태·보건·농업·수자원·재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마련돼야 한다. 환경부·보건복지부·농림수산식품부·국토해양부 등이 적응 대책을 수립해야 할 중요한 부처로, 그 역할을 정립해야 된다.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적응하느냐에 따라 위기는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지구온난화 연구와 대책이 대부분 온실가스 저감기술 개발에 치우쳐 있는 현실은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지구온난화 대책에 투자한 예산은 4000여억원이었으나 90% 이상이 온실가스 저감 대책에 쓰인 반면, 적응 대책 예산은 3%에도 미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적응 대책을 국민에게 충분히 이해시키는 과정이다. 정부는 적응 대책 수립을 위한 연구·투자와 동시에, 연구결과로 수립된 적응 대책이 우리 생활에 미칠 크고 작은 영향에 대해 미리미리 국민에게 인지시키고 대책에 대한 믿음을 끌어내야 한다.

인간은 변화를 싫어하게 마련이며, 어떤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반드시 혼란과 불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new) 위험, 잘 알려지지 않은(unknown) 위험, 피할 수 없는 비자발적(non-voluntary) 위험, 수백 년에 한 번 일어나더라도 치명적인(dreadful) 위험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광우병 사태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웠다. 지구온난화 적응 대책에서는 이러한 소통의 실수를 또다시 범하지 않길 바란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100% 확실치 않다는 것만이 확실한 지금, 우리가 잊지 말고 꼭 준비해야 될 대책이 바로 ‘적응 대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김영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출처: 중앙일보 2008.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