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11월 2011

[박행순 칼럼] 소박하고 건강한 삶을 배운 포카라 여행

[박행순 칼럼]

소박하고 건강한 삶을 배운 포카라 여행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는 지난 시월 중순, 3박4일의 일정으로 포카라를 향해 첫 여행을 떠났다. 차가 카트만두를 벗어나자 한쪽은 산비탈, 다른 쪽은 낭떠러지를 낀 계곡이나 강을 따라 달려간다. 백양사 계곡보다 훨씬 더 경사진 산 아래는 단풍이 전혀 없어서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을 느낌은 들지 않지만 산이 웅장하고 푸른 숲이 울창해서 또 다른 자연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가파른 산길을 굽이굽이 돌고, 도로가 좁아서 속도를 내다가는 차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난다. 인도에서 물건을 잔뜩 실은 차들이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온다. 네팔은 공산품으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인도에서 수입한다.
여행길에 한국 회사에서 건설했다는 수력발전소를 지나갔다. 네팔은 전적으로 수력발전에 의존하는데 히말라야 눈이 녹아 흐르는 강물은 네팔을 적시고 인도 갠지스강으로 흘러든다. 네팔 강우량은 단위면적당 세계 1위인데도 현재까지는 제한송전을 한다. 상황과 계절에 따라 이번 주에는 몇 시간 정전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 대용량 댐을 건설하기에는 지형적으로 적합하지 않고, 또 네팔 상류에서 수량을 제한하면 인도와 물 문제로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고 들었다.
지난여름, 한국에서 예고 없이 갑작스런 5시간 정전사고가 났을 때, 전국이 야단법석이고 소송이 잇따를 것이라는 뉴스를 전해 들었다. 네팔인들이 이 뉴스를 들으면 도대체 일 년에 5시간 정전이 무슨 대수냐고, 우리를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서 예고 없이 정전이 될 경우, 기업체, 산업체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입을 피해와 손해를 생각하면 전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곳 네팔에서는 알아서 자가 발전 시설을 갖추거나 태양광을 설치하기 때문에 정전시 입는 피해를 소송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히말라야의 눈산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포카라까지 거의 6시간을 달려왔다. 다시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서 찻길이 끝나는 곳에서 짐을 내렸다. 한적한 곳에 텐트를 치고 이른 저녁을 먹은 뒤 모닥불을 피워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고 막 만월을 지난 밝은 달이 떠 있는데 저 멀리 눈산은 안개인지 구름인지에 가려있다. 자정을 넘기고 구름이 걷히면서 제일 먼저 ‘마차프파레(물고기 꼬리라는 뜻)’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점차로 병풍을 둘러친 듯 이어진 순백의 웅장한 산봉우리들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달빛아래 드러난다. 그 모습이 마치 무대 위에 배우가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거대한 히말라야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날이 밝자 캠핑장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계단식 푸른 농지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람들은 텃밭에 들깨, 양배추, 토마토와 여러 가지 곡식을 가꾼다. 풀밭에는 토종닭들이 모이를 찾아 돌아다니고 집집마다 염소가 몇 마리씩 눈에 띈다. 전기 사정은 인구가 밀집한 카트만두보다 오히려 이런 산골이 더 낫다고 한다. 자연은 땀 흘린 만큼 필요한 양식들을 공급하며 인간을 품어준다. 최소한의 문명의 혜택만으로 사는, 소박하고 건강한 삶이 어떤 것인지 네팔에서 배운다.
네팔 산골의 화장실은 우리 시골의 변소, 뒷간, 또는 측간이라고 불렀던 공간을 생각나게 했다. 수세식 변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고유의 몇 단어가 우리 언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간 것도 바로 네팔에서였다.
박행순 파탄의대 객원교수·전남대학교 명예교수·과실연자문위원(** 본 칼럼은 2011년 11월 29일자 광주일보에 실렸습니다.)

[최양희 칼럼] 인문과 기술 융합 이뤄내려면

[최양희 칼럼]

인문과 기술 융합 이뤄내려면

진정한 기술혁신을 하려면 인문과학(liberal arts 또는 humanities)과 기술(technology)을 잘 섞어야 한다고 스티브 잡스는 설파해 왔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는 마술적인 것이 있다고도 했다. 잡스의 우상이었던 폴라로이드를 발명한 에드윈 랜드(Edwin Land)도 과학과 예술의 결합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두 사람은 모두 대학 중퇴,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 난 발명 천재라는 매우 닮은 인생역정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이들은 말로가 아니라 제품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했다. 에드윈 랜드의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스티브 잡스의 성공작인 아이팟ㆍ맥ㆍ아이폰ㆍ아이패드는 모두 제품철학과 디자인에서 인문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애플 열풍에 놀란 한국은 요즈음 인문과 기술의 융합을 공부하느라 바쁘다.
잡스가 왜 인문을 말할까. 간단히 말하면 상상력 또는 틀을 깨는 발상은 기술에서만 출발한 것보다 인문학적 사고에서 비롯될 때에 더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한국에서 인문학이라 함은 이보다는 문학ㆍ역사ㆍ철학으로 구성되는 어렵고 두꺼운 서적들이 연상되는 기초학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인문학을 알면 왜 상상력이 풍부해질까 하는 의심을 하는 의견도 사실 많다. 그러나이는 인문학 (humanities)이 단지 문ㆍ사ㆍ철만 아니라 종교ㆍ음악ㆍ공연ㆍ미술ㆍ디자인ㆍ기초과학도 포함하는 교양(liberal arts)으로 서양에서는 이해되고 있다는 점을 알면 놀랄 일이 아니다. 잡스도 인도와 동양에 머물면서 서구와 다른 문화에 매료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우는 지름길이 과연 넓은 의미의 인문학인가. 그렇다. 주된 이유로는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에 정답이 있는가? 음악에 옳고 그름이 있는가? 아니다. 즉 기술자는 항상 정답을 알아내는 데 몰두하는 데 비하여 인문학자는 독자의 의견과 주장을 펼치는데 온 힘을 쏟는다. 따라서 새로운 의견과 아이디어를 스스로 발굴해내는 능력이 인문학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즉 기술자가 인문학적 소양에 익숙하면 독창적이고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발명을 이룩해 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인문과 기술의 융합을 어떻게 이루어 낼 수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시되거나 논의되는 안들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이공계 대학에서 인문학 과정 교육을 강화하자, 또는 기술개발 그룹에 인문학 전공자를 일정 비율 이상 반드시 투입하자,또는 기술개발 예산의 일정비율을 인문학 연구에 배정하자, 또는 인문과 기술융합을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하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보다는 더 근본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남과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이 상상력의 출발이라고 보면 획일적이고 정답을 외우는 초ㆍ중등 교육이 개선되어야 한다. 각 개인이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탐구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다른’생각을 존중하는 교육과정을 도입해야 한다. 교육에서 학생들을 승자나 패자로 구분해 온 결과가 현재 한국 사회 분열의 큰 원인 중의 하나이라면 `다양성’의 도입이 더욱 우리나라 교육에 필요하다. 이런 교육개혁을 앞당기려면 IT에 기반한 스마트교육, 학교가 모든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제공하여 다양한 교육 앱을 도입하는 오픈 교육, 담임교사와 교실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넘는 버추얼 교육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태어나는 훌륭한 세계시민은 상상력만 갖춘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동시에 높은 윤리의식을 갖추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국가ㆍ사회ㆍ개인은 더 안정되고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과실연 회원
(** 본 칼럼은 2011년 11월 24일자 디지털타임스에 실렸습니다.)

[김승환 칼럼] 과학 언어 이해하기

[김승환 칼럼]

과학 언어 이해하기

올해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IDC는 “지난 10년간 생성된 정보량보다 최근 2년간 생성된 것이 훨씬 더 많으며, 2020년이 되면 현재의 50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는 ‘빅데이터’의 정보 홍수 속에 살고 있으며, 과학자들도 이를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주위 과학자들에게 물어보면 인접 분야는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최근 논문을 다 소화하며 최신 연구동향을 따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학술논문 출판이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의학 분야에서는 현재 2,000만 개 논문이 있고, 매일 4,000편이 추가되고 있다.
‘빅데이터’시대에 맞춰 문헌을 읽고, 정보 질을 평가하고, 사실들간 패턴과 연결성을 찾아내고, 시험해볼 가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과학자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과학 발견 과정을 가속화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요인들을 고려해 복잡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텍스트마이닝’기법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대 안나 코호넨 박사 팀이 인간과 유사한 방법으로 논문 문장을 이해하는 새로운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연구팀은 우선 가장 문헌 의존도가 높은 생의학 분야에서 화합물의 암발생 위험성 평가에 초점을 맞췄다. 매년 수천 개 새로운 화합물이 개발되면, 사람 건강에 잠재적인 위험을 주는 유독성 물질인지에 대한 매우 복잡한 평가 과정을 거쳐서 노출도와 발병가능성간 관계를 판단해야 한다. 보통 첫 번째 단계는 문헌 검토로 진행되는데, 학술논문의 빅데이터화로 수작업이 어려워져 텍스트마이닝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팀의 ‘바이오텍스트마이닝’ 기법은 학술논문 텍스트나 이미지를 포함한 비정형 데이터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자동으로 찾아내고 상호연관관계를 지워주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한다.’텍스트마이닝’ 기법은 인간 언어와 같은 자연어 처리 기술의 혁명적 발전에 기초하고 있다. 올해 초 IBM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이 미국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역대 최강 챔피언을 포함한 인간 도전자들을 누르고 최종 우승한 것도 바로 이 덕분이다. ‘왓슨’은 자연어 처리에 기초한 인공지능 기술로 무장해 사람 언어를 분석하고,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답을 찾아 그 정확도도 함께 평가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아이폰 ‘시리’도 지능형 음성인식 서비스와 텍스트마이닝 기술의 연동으로 탄생한 일종의 ‘인공비서’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발표된 ‘IBM 기술동향 보고서’는 인공지능 ‘왓슨’이 앞으로 맹활약할 분야로 교육과 의료분야를 들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형 ‘텍스트마이닝’ 기술은 금융서비스, 생명과학, 소셜네트워크 등 ‘빅데이터’와 관련된 분야에서 활발하게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왓슨’은 이미 미국 병원 ‘세톤 헬스케어 패밀리’와 함께 비정형의 의료용 콘텐츠 및 예측 분석 등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 한다. 벌써 똑똑해진 컴퓨터가 진단을 보조하고 당신의 치료를 돕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컴퓨터 및 다양한 스마트 기기 인공지능은 점점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점점 더 똑똑해지는 기기들 도움으로 더 완벽하고 창의적인 존재로 진화해나가고 있다. ‘빅데이터’격랑 속에 이제 과학적 발견도 ‘인공지능 비서’와 함께 하는 시대가 온 것인가?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아태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과실연 집행위원장

(** 본칼럼은 11월 21일 한국일보에 실렸습니다.)

 

[이덕환 칼럼] 겨울철 대정전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이덕환 칼럼]

겨울철 대정전은 재앙이 될 수 있다

난방 대부분 전기에 의존… 전력수요 조절은 불가능
혹독한 추위에 전기 끊어지면 농촌과 저소득층 막대한 피해
등유 보일러 설치 지원하고 전기요금과 유류세 조정해야
찬비가 전국을 휩쓸더니 기온이 뚝 떨어져 버렸다. 기상청의 장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겨울은 정말 춥고 혹독할 것이라고 한다. 몸만 추운 것이 아니라 마음도 편치 않을 모양이다. 유럽발(發) 경제위기로 국제정세도 불안하고, 총선과 대선을 앞둔 국내정국도 혼란스럽다.
게다가 이 겨울은 지난 추석 직후의 늦더위에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전력 부족 사태가 더 악화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안이하고 공허한 전력대책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조짐을 찾아볼 수가 없다. 겨울철 전력위기는 권위주의 시절에나 통하던 정책수단인 소비규제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겨울철 정전은 여름철과 사정이 전혀 다르다. 특히 지난겨울 같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전기가 끊어져 버리면 재앙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가정, 사무실, 산업현장의 거의 모든 난방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전열기, 전기담요, 온풍기를 포함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난방장치가 무용지물로 변해 버린다. 심지어 가정용 가스보일러도 꺼져 버린다.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통째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특히 농촌과 저소득층이 위험하다. 단열상태가 좋지 않은 비닐하우스나 축사(畜舍)는 단시간의 정전도 견뎌내기 어렵다. 농작물과 가축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전기담요 한 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 노인들도 위험해진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미 지난 1월 17일 정오에 예비전력이 400만kW 아래로 떨어지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전력수요의 25%가 난방용이기 때문에 벌어진 황당한 사태였다. 그 이후로 우리의 사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발전소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전력수요가 줄어들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대통령의 지적과 달리 겨울철에는 피크 타임도 큰 의미가 없다. 추위가 찾아오면 하루 24시간이 모두 위험하다. 겨울철에는 야간에도 난방수요가 크게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 17일에는 심야의 전력수요도 피크 수요의 80% 수준을 넘었다. 2009년 이전에는 겨울철 전력 피크가 낮이 아니라 심야시간에 나타났었다. 그래서 심야에도 몇 개의 발전소나 송전망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위기 상황이 돼버린다. 더욱이 혹한의 심야시간에 벌어지는 정전 사태는 제대로 대응도 할 수 없다.
전기 난방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맹추위가 몰아닥치면 정부의 안이한 수요관리 대책은 당장에 효력을 잃어버린다. 소비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온이 떨어지면 난방용 전력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난방용 전력수요를 줄이라는 요구는 무의미한 것이다. 맹추위 상황에서는 전력예비율이 떨어진다고 무작정 순환정전을 실시하기도 어려워진다. 순환정전 자체의 피해도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기요금을 적정한 수준으로 인상하고, 과도한 할인율도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맹추위가 코앞에 와있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 전기요금 조정은 우는 아이 뺨 때리는 격이 될 것이다.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전기난방의 비중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등유가 최선의 대안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세계 5위의 원유(原油) 정제능력을 가진 정유사들이 있다. 외국으로 수출하는 경유를 내수용 보일러 등유로 활용하면 난방용 전력수요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등유를 이용한 직접난방의 효율은 전력생산 효율의 3배 이상이라는 사실도 매력적이다. 더욱이 등유에 부과하는 특소세를 조정하면 소비자의 부담도 줄여줄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당장이라도 농가와 산업체에 등유 보일러 설치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 그동안 고유가로 올린 유류세와 부가가치세 추가징수분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가정과 사무실에 등유나 가스히터를 준비해두는 지혜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적극적인 에너지 공급 확대와 함께 에너지의 효율적·합리적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진짜 저탄소 녹색 에너지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전기요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를 획기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시작이다. 유류세와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져서 가장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인 전력산업과 석유산업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잘못된 정책은 당장 개선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에너지와 자원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에너지자원부가 필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및 과학커뮤니케이션/ 과실연 회원
(** 본칼럼은 11월 20일 조선닷컴에 실렸습니다.)

[장재열 칼럼] 왜 과학자는 정치에 나서면 안되는가?

왜 과학자는 정치에 나서면 안되는가?

18일 아침 신문을 보니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물러나면서 안철수 원장의 정치 참여에 대해 한마디 한 모양이다.

과학자가 정치에 한눈을 팔면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허나 당연한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간 정치에 참여한 교수나 언론인들을 ‘폴리페서’ 니 ‘폴리널리스트’ 라고 부를 정도로 과도한 정치 참여가 이루어져왔다. 이제는 누구도 정치나 공직에 들어간 교수 보고 ‘학생들이나 잘 가르쳐라’ 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네 본분을 지켜라’라는 당위성은 자리다툼에서 나의 기득권을 위협할 때 나오는 말이 돼 버렸다. 고급공무원이 나오면 전문성과 관계없이 기관장 자리 찾아가고 정권이 봐 주어야하는 사람은 낙하산으로 내려간다.

우리 정치권과 공무원 사회는 지금 인력 수급의 극심한 불균형에 빠져 있는데 인문계 전공자과 이공계 전공자의 비율이 그것이다. 특히 국회의원이나 간부급에 올라가면 이공계 전공자가 가물에 콩나기다. 나 자신이 근무했던 언론사에도 기자 1백명에 이공계출신이 1~2명에 불과했다.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하지만 인문계 출신이 정치․ 경제 ․ 사회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이공계 출신은 과학기사에나 적합하다고 끼어주지 않는다.

정치나 공직 사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사회 각 부문이 엄청나게 분화했기에 그 전문성에 대응하는 이공계 전문가들이 적정하게 의사 결정분야에서 봉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실제는 법이나 경제 ․ 금융 분야 전문가들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

특히 정치 분야의 법률 전공자의 수는 위험수위다. 현 18대 국회의원 중 판 ․검사, 변호사에 해당하는 법률가만 58명이다. 16대에는 41명이었으나 이번에 크게 늘었다. 전공이 법 관련 분야 국회의원을 포함한다면 이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출마자가 다 변호사 출신이며 전임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니 대한민국은 법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이렇게 법 ․ 경제 ․ 금융 등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만 모여 국정을 좌우할 때 균형 잡힌 정책이 가능하겠는가?

‘폴리페서’가 아닌 과학자의 본격적 정치 참여는 오히려 권장해야 정치인의 극심한 직종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최중경 전 장관은 세계적인 과학자도 아닌 안철수 교수에게 연구나 하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장관직에 있을 때 교직은 그대로 갖고 공직을 기웃거리는 교수를 임용했는지,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를 했는지 돌아 보는게 우선일 것이다.

 

 장재열 과학문화콘텐츠센터 소장 / 과실연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