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7월 2013

강신영 새 상임대표 “네트워크를 통해 힘을 기르는 것이 꿈”

강신영 새 상임대표 “네트워크를 통해 힘을 기르는 것이 꿈”

과실연과의 운명적 만남…사람 관계를 소중히 생각

 

2012년부터 과실연을 대표할 새 상임대표로 강신영 전남대 교수가 선출됐다. 강 상임대표는 과실연 창립 멤버로 공동대표, 집행위원장, 자문위원을 거쳐, 최근에는 정책연구소장을 맡아왔다. 과실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전남 광주에서 전국을 아우르는 조직을 끌어가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임원추천위원회와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의 마음을 녹였다.

과실연의 상임대표직을 맡은 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과실연과의 첫 만남을 묻자, 강 상임대표는 한마디로 ‘운명적’이었다고 대답했다. 2005년 늦봄 우연히 걸려온 이병기 서울대 교수(현 명예대표)의 전화 한 통에 강 교수와 과실연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창립 취지에 공감한 그는 흔쾌히 동참하기로 했고, 그 해 12월 창립총회가 열리기까지 창립 준비에 힘을 쏟았다. “창립 준비 과정에서의 제 역할은 과실연 정관을 준비하고 조직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비정부기구의 정관과 조직을 참조하며 과실연 정신을 실현할 가장 좋은 조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여 완성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죠.”

 

과실연 창립 때부터 창립 정신 구현에 힘을 써온 그는 과실연 회원으로서 가장 뿌듯한 일을 묻자, “과실연이 국민과 과학기술계에서 신뢰 받는 기구로 자리잡는 것”이라 대답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과학기술부가 해체되자 과실연의 이름으로 신문에 그 부당성을 알리는 광고를 게재했던 사건은 과실연이 과학기술계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기구로 거듭나게 된 ‘터닝포인트’였다고 덧붙였다. “광고 게재뿐 아니라 줄기세포 문제, 통․방 융합 문제, 과기 부총리 역할, 이공계 활성화, 원전 수출 등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전화회의를 통해 장시간 토의하고 행동하는 기동성을 발휘해온 것이 과실연이 가질 수 있는 힘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들로 인해 신뢰를 얻게 된 것 아닐까요.”

 

올해는 대내외적으로 과학기술계의 사회적 역할이 주목받는 시기이자 총선과 대선이 맞물려 국가 차원의 새로운 리더십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이 예민한 시기에 과학기술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과실연의 역할을 묻자, 그는 “과실연 정책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생각해온 과학기술계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 반 세기 동안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하는 중심에 과학기술이 있어온 것처럼, 이제 산업사회의 틀을 벗어 지식창조융합사회로 발돋움할 때 과학기술이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 이것이 창립 발기문에서도 밝혔던 과실연의 창립 정신이라는 뜻이다. “과실연 차원에서 차기 정부가 추구해야 할 과학기술 국정과제와 이를 성공적으로 실현할 정부 구조에 대한 제언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포부도 덧붙였다.

 

‘강신영표 과실연’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내적 네트워크의 강화’. 내실을 단단히 다져 생명력 있는 단체로 만들겠다는 것이 강 상임대표의 목표다. “1대 상임대표 이병기 교수님이 과실연의 창립 정신과 철학을 정립했고, 2대 상임대표 민경찬 교수님이 과실연의 대외적 위상 정립에 기여했다면, 저는 집단 지성인 과실연의 회원 간 네트워크를 단단히 하여 이 네트워크를 통해 힘을 기르는 것이 꿈입니다. 네트워크가 생명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도록 힘차게요.”

 

스스로를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라고 표현한 강 상임대표.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공부해서 평생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런 노력 속에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이라고. 그렇게 자라 와서 늘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해왔단다. ‘복 많은 시골 사람’, 강 상임대표가 만들어가는 사람 냄새나는 과실연의 새해를 기대해 본다.

 

이승아 (과실연 웹진기자, himeru67@hanyang.ac.kr)

“국내 과학언론 ‘도약’을 꿈꾸다” – 곽재원 집행위원

[과실연 인물] 곽재원 집행위원

국내 과학언론 ‘도약’을 꿈꾸다

아직 우리나라 과학 언론계는 좁다. 우리 사회가 ‘과학적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곽재원 중앙일보 대기자(과실연 집행위원)는 과학 언론계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 인생을 시작하여 현재 중앙일보 대기자로 30년 가까이 과학 언론인으로 활약 중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곽 기자는 금속공학 박사다. 공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와의 접점이 없는 현실이 답답하여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80년대 초, 과학기술시대가 열리면서 과학전문기자의 수요를 예측한 것이다.

 

“과학전문기자는 과학과 국민 사이의 Gray zone, 그 애매한 접점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때 전망을 보고 이 길로 왔는데, 오히려 지금은 이러한 인력이 많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사의 경제 순환 때문에 확충을 못하는 상태죠.” 그는 공학 박사 출신의 기자라는 장점을 살려 산업, IT 분야 등 과학기술이 접하는 미시 경제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뤄왔다.

 

그가 재직 중인 중앙일보에는 과학기술분야를 다루는 ‘지식과학부’가 있다. 이 부서에는 박사 출신의 전문기자와, 다른 부서를 모두 경험하고 자신의 분야를 갖게 된 일반기자들이 함께 포진해있다.

 

과학기자 지망생이 고려할 수 있는 입사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이다. 박사 이상으로 전문성이 인정되어 전문기자 호칭을 얻는 것과 대학 졸업 후 바로 기자가 되어 일을 하다가 자신만의 전문 취재 분야를 갖는 방법이다. 후자의 경우 과학 전문 매체에 입사하는 것과 일반 언론사에서 모든 부서를 거친 후 과학 분야를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요즈음, 많은 이공학도들이 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한다. 이러한 큰 줄기를 두고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을 택하여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아무래도 이공학도들이 언론사 입사 시험에 취약한 부분이 많다보니, 전문지와 일반 언론사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할 겁니다. 하지만 꼭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인터넷과 SNS의 여파로 취재와 보도의 방법이 다양해질 수 있다는 거죠.” 더불어 ‘과학 언론’이라 이름 짓기 전에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알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과학언론의 역할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국민에게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 △과학이 기술만능주의로 빠지지 않게 조언하는 것 △과학기술이 국민 생활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도록 돕는 것 △전문가와 정치인, 일반 국민들 사이 인식의 갭을 줄여주는 것.

 

“아직 국내 과학언론은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다만 역량 있는 전문 기자를 많이 육성하고, 전문가와 과학기자들 간의 상호 협력이 더 끈끈해진다면 한 단계 ‘레벨 업(level up)’이 가능하겠지요.”

 

98년 IMF 이후 언론사 내의 구조 조정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부서가 각 언론사 과학기술분야라는 점이 아쉽다고 곽 기자는 말한다. 좋은 연구가 늘어가는 국내 상황과,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학기술시대에 발맞추어 국내 과학언론에도 힘을 실어야 주어야 하겠다.

 

이승아(과실연 웹진기자, himeru67@hanyang.ac.kr)

김준년 수도권 대표 “국민들과 친근한 과실연 되면 좋겠다”

[과실연 인물]김준년 과실연 수도권대표

“국민들과 친근한 과실연 되면 좋겠다”

“저녁 때 만났으면 와인이라도 한 잔 했을 텐데”

햇살이 좋고 벚꽃이 만개했던 4월의 봄날 캠퍼스에서 만난 김준년 교수(중앙대)는 인터뷰라는 사실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특유의 친근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인사를 건넸다. 편안하고 친근한 그의 성품처럼 과실연도 많은 사람들과 더욱 친해지기를 바랐다

 

 

◆국민들의 실생활에서 이슈를 찾아야 한다

 

김준년 과실연 수도권 대표는 요즘의 과실연을 보면 무척 뿌듯하다고 말했다. NGO단체로는 후발주자인 과실연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년 대표는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과실연을 국내 대표적인 과학기술 전문 민간단체라고 설명하는 것을 읽었다며 이러한 결과는 과실연 상임대표를 비롯한 여러 회원들이 시민단체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고, 항상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년 대표는 그러나 큰 이슈인 국가적 정책뿐만 아니라 국민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는 과실연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과실연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국가 정책적인 부분과 국민들의 실생활에 관련된 부분 모두를 챙길 수 있어야 더욱 NGO단체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 예로 대학의 등록금 문제를 꼽았다. 김 교수가 대학에서 기획실장을 할 때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서울 소재 사립대학의 경우 매년 전체 예산의 10%가 남는데 매년 등록금은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이 교직원 규모를 줄이고 학교 운영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한다면 얼마든지 대학 등록금 인하가 가능한데도 대학에서는 연 10%씩 올리고 있다면서 이는 비과학적인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를 과실연 차원에서 검토하고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적정한 수준의 등록금액을 제시한다면 국민들에게 훨씬 가까이 갈 수 있는 과실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년 교수는 과실연이 과학기술분야를 다룬다고 하면 국민들과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며 그러나 과학은 눈에 보이는 기술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며 국민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 역시 과학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민들이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과실연이 나아갈 방향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국민들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 문제처럼 비과학적인 논리에 의해 국민들이 손해를 보고 있는 이슈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준년 대표는 은퇴 준비 중…

 

김준년 대표는 과실연이 국민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로 은퇴 준비를 돕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실제 김준년 대표는 10년 정도의 정년이 남았지만 은퇴 준비에 한창이다. 복합 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 안동 김씨인 그의 집에는 조선시대부터 사용하던 민속품들이 많다. 이를 바탕으로 1층에는 민속 박물관을 만들고 2층에는 와인뱅크 겸 와인바, 3층에는 갤러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서 문화와 술을 동시에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단다.

 

김준년 대표의 은퇴 후 계획은 막연한 청사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현재 다양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 중이다. 우선 민속 박물관은 도자기, 서화 등을 따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규방, 행랑을 그대로 재현해 조선시대 생활 문화의 맥락 속에서 민속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꾸미는 것이 계획이다. 와인바에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음악을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이 연주 공간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대여해 주고 갤러리 역시 미대를 막 졸업한 친구들이 전시공간이 필요할 때 공간을 내어줄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영국의 와인전문교육기관인 WSET(Wine & Sprit Education Trust)에서 주관하는 국제 와인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고 있는 중이고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도 하고 있다. 민속 박물관을 위해 골동품 감정사와 큐레이터 자격증도 취득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김준년 대표는 “아는 사람들이 내 계획을 들으면 그거 돈이 되겠냐고 되묻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온 사람인만큼 은퇴 후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면서 사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은퇴 후는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돌잡이 하는 아이처럼 내가 죽는 날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새롭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이 은퇴 후를 준비하는 좋은 예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준년 대표는 은퇴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현실적인 문제인데 그 이후의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과실연에서 이러한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국민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이것 역시 과학기술 NGO단체로서 국민들을 위하는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년 대표는 인터뷰 내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고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그 방법대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있었다. 과실연 활동 역시 NGO로써 다수의 국민들에게 이롭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김준년 교수는 수도권 대표로써 우선은 회원들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는 방법부터 실천해 볼 생각이라며 와인 동호회 같은 소모임을 조직하거나 문화행사를 통해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과실연 홈페이지를 이용해 와인 관련 글을 써서 와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무료로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지식의 나눔에 대해서도 실천의 의지를 보였다.

 

이지은 과실연 웹진기자(prayjieun@naver.com)

‘반디펜’과 ‘야광봉’만든 희망의 발명가 김동환

 

<과실연 사람들> 김동환 길라씨엔아이 대표

 

‘반디펜’과 ‘야광봉’ 만든 희망의 발명가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동환 길라씨엔아이 대표(과실연 집행위원)는 식사자리에서 밥을 먹지 못해 누룽지 끓인 것을 대신 먹었다. 왜 밥을 못 드시느냐 물으니 몸이 약해져 쌀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된다며 멋쩍게 웃었다.

 

김동환 대표가 건강이 나빠진 것은 사업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1999년 정부는 인구가 감소하면 가격 경쟁력보다는 고부가가치 기술을 국가의 핵심 역량으로 삼아야 한다며 신기술개발 지원책을 발표했다. 그 중 하나가 건설 신기술 지정제도인데 정부가 인정하는 신기술을 개발하면 공공 공사 설계 때 의무적으로 정부가 인정하는 신기술을 설계에 반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 법만 믿고 도로 표지병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도로 표지병이란 야간이나 비가 올 때 차선을 명확히 표시하기 위해 차선에 못처럼 박아둔 도로표지다. 김 대표는 순수 개발비만 37억원 가량을 들여 ‘반디 표지병’이라는 이름의 도로 표지병을 개발했다.

 

김 대표는 2002년 과학기술부의 국산신기술인정(KT)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건설교통부의 건설기술지정(CT)을 받았고, 2005년에는 산업자원부의 신제품인증마크(NEP)와 환경부의 환경마크까지 받았다. 여기에 중소기업청이 주는 동종제품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하는 제품에 주는 ‘성능 인증’도 받았다. 그는 동종 제품 중에서 5개 모두를 받은 제품은 ‘반디 표지병’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가장 좋은 품질을 자랑하면서도 반디 표지병은 수익을 거의 내지 못했다. 정부가 신기술 지정제도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반디 표지병’ 영업을 하러 다니면서 점점 절망에 빠졌다. 공무원들은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뇌물을 주는 다른 기업의 제품을 계약했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경제적, 심리적 피해는 고스란히 김대표의 몫으로 돌아왔다. 불면증과 우울증이 김 대표의 건강을 위협했다. 김 대표는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발명품은 ‘반디 표지병’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반디 표지병을 옆에서 본 모습

 

◆반디펜과 야광봉이 ‘희망의 불빛’

 

김동환 대표는 ‘반디 표지병’ 때문에 회사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다행이 작년까지 빚을 모두 청산했다. 그에게는 불빛을 내는 볼펜인 ‘반디펜’과 응원도구인 ‘반디 야광봉’이 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잃고 헤매던 김 대표에게 한줄기 희망의 불빛이 되어준 셈이다.

 

‘반디 펜’은 1994년에 개발된 김동환 대표의 첫 발명품이다. 지름 0.002mm 사이로 볼펜심이 통과할 수 있는 액정전구(LED)를 장착한 볼펜으로 어두운 곳에서도 LED불빛을 이용해 필기를 할 수 있다.

 

김동환 대표는 ‘반디 펜’으로 처음 유명해졌으며 수백억 원의 수익을 냈다. 김 대표는 “발명품 중 가장 큰 수익을 올린 것이 바로 반디 펜”이라며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환 대표가 국내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모닝글로리라는 문구 업체가 ‘반디 펜’의 특허를 침해하면서 부터다. 김동환 대표는 당시 ‘반디 펜’의 이름을 ‘moon night’로 상표등록을 했었다. 모닝글로리가 이 상표명을 사용하면서 특허 분쟁이 벌어졌다. 언론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며 집중 조명했고 김 대표가 승소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김 대표와 반디 펜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월트 디즈니에서도 moon night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특허를 침해했고 다시 특허분쟁이 생겼다. 한국의 작은 사업체와 소송이 걸리면서 CNN이 이를 집중 조명했고 해외에서도 반디 펜이 주목을 받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6년 일본에서 고베 지진이 일어났고 김 대표는 반디 펜 5천개를 적십자에 기증했다.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반디 펜을 사용해 필기하는 장면이 일본 방송국의 전파를 탔고 이를 계기로 1997년엔 일본 문구협회 소비자상을 받기도 했다.

 

김동환 대표는 덕분에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시장에 어렵지 않게 진출할 수 있었다며 “반디 펜은 행운이 많이 따른 발명품이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반디 펜은 국내 경찰과 군대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해외 군대에서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김 대표는 “운이 좋은 발명품이 또 있다”고 말했다. 연예인 팬클럽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는 야광봉이 그것이다. 김동환 대표는 “이 제품을 2002년 2월에 만들었는데 마침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야광봉을 응원도구로 사용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한류열풍의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동환 대표는 “각 가수마다 상징하는 색깔이 있는데 그 중 그룹 god를 위한 하늘색 야광봉과 가수 세븐을 위한 7모양의 야광봉을 만들면서 이것이 해외 팬들에게까지 퍼졌다”며 한류열풍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때로는 반도체 칩보다 포테이토 칩이 더 잘 팔릴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며 때로는 변화의 속도가 느린 제품이 더 높은 수익을 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 대표는 반디 펜과 야광봉의 꾸준한 매출로 반디 표지병으로 인한 손해를 모두 메웠다.

▲반디펜

▲야광봉

 

◆아픔도 발명으로

김동환 대표는 자신의 아픔도 발명으로 승화시켰다. 반디 표지병의 실패로 생긴 불면증을 치료에 도움이 되는 식품을 개발해 현재 식약청에 등록을 기다리고 있으며 올 10월경 상품화 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힘든 일 때문에 잠을 너무 못자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 식품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동환 대표는 이미 400명 정도가 이 식품으로 효과를 봤다며 앞으로 출시될 식품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김 대표는 어려워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정도를 지키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며 과실연에 가입하게 된 것도 ‘바른 과학기술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가 좋아서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과실연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며 앞으로 과실연에서 산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과학기술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은 과실연 웹진기자(prayjieun@naver.com)

“내년 하반기 40인승 위그선 완성” – 강창구 박사

 

[과실연 인물] 위그선 기공식 가진 강창구 박사

“내년 하반기 40인승 위그선 완성”

 

“큰 산은 다 넘었다고 봐야죠”

지난 6월 26일 군산에서 위그선 공장 기공식이 열렸다. 위그선은 수면 5m 정도 위에 떠서 시속 300km 속도로 달리는 선박으로 ‘나는 KTX’라 불린다. 인천에서 출발하면 제주도나 중국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위그선 상용화의 중심에는 여러 번의 고비 속에서도 소신 있게 기술개발에 매진한 강창구 박사(윙쉽테크놀러지 대표)가 있었다.

 

강박사는 해양연구원 선박해양연구센터장을 지냈고 과실연 초창기 정책위원장으로 맹활약을 했다. 2007년 해양연 위그선 연구팀을 이끌고 직접 벤처기업을 창업해 연구 아이템의 상용화에 인생의 승부를 걸고 있다.

 

강 박사는 “아직 할 일은 많지만 연구를 지속하기 힘들 정도로 타격을 줄만한 고비는 모두 넘긴 셈이니 앞으로는 위그선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 되겠지요”라며 웃었다. 내년 하반기쯤 40인승 위그선이 완성될 것이라며 안도와 기대감이 교차한다고.

 

강창구 박사는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기술연구이기 때문에 모든 면이 어렵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그선은 해수면에 가까이 떠서 달릴 때 생기는 지면효과를 받아서 선박의 경제성과 항공기의 속도를 결합한 것으로, 처음 위그선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것이 배인지 항공기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후 국제해사기구(IMO)와 민간항공기구(ICAO)에서 고도 150m 이상에서 운행하는 경우는 항공기로, 이하로 운행하는 경우는 선박으로 분류하겠다는 기준을 발표하면서 해상 5m 정도에서 비행할 위그선은 선박이 되었다.

                        ▲차세대 해상운송수단으로 관심을 받고있는 위그선 조감도

 

강창구 박사는 여러 고비 중에서도 가장 마음 졸였던 부분으로 법률 부분을 꼽았다. 강 박사는 “전기자동차는 아직 법에 교통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기술개발이 되었다고 해도 상용화 시킬 수가 없어요”라며 “위그선도 그렇게 될까봐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다.

 

강창구 박사가 연구하는 위그선은 세계 최초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데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기술개발을 해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강 박사는 “다행히 위그선은 해상교통안전법에 수면비행선박으로 명명되고 5월 17일에 법안이 공포되면서 합법적 교통수단이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기술개발은 연구원들끼리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며 “제 때에 기술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드는 분들께서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기자가 위그선의 장점에 대해 설명해줄 것을 부탁하자 강창구 박사는 뿌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위그선은 녹색 수송수단입니다. 선박이 공기쿠션을 이용한 해면효과를 이용하면서 연료의 소모가 적습니다.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겠지요. 게다가 높은 고도로 비행을 하면서 성층권에 직접 온실기체를 뿌리는 항공기와 달리, 위그선은 낮게 비행하기 때문에 성층권에 영향을 덜 줍니다. 이산화탄소가 무거운 축에 속해서 대기권에서 성층권까지 올라가기가 쉽지 않은 것은 알고 계시죠?” 라며 친절히 설명했다.

 

파도의 영향이 없어 멀미가 나지 않는 것도 강조했다. “천하장사도 멀미는 못 견디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없으니 사람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요소가 되겠지요” 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또한 “이렇게 의미 있는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연구를 그만 둘 수는 없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위그선 실용화는 세계 최초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반대도 많았다고 한다. 연구비를 요청할 때도, 법률을 만들 때도 늘 따라다니던 질문은 ‘미국과 일본은 위그선을 연구하고 있는가? 성공한 사례는 있는가? 선진국에서도 개발하지 못한 기술을 과연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들이었다.

 

강 박사는 “이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우려들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라며 “그들이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입법하는 사람들과 연구비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아쉬움은 나타냈다.

 

“선진국은 다른 나라에서 베껴 쓰려는 것들이 많은 나라를 가리키는 겁니다. 헌데 언제까지 선진국 사례가 있는 분야만 연구할 겁니까?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 선진국이 되려고요. 얼마전 김중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기만 하면 안 된다고요. 새로운 것을 연구하다보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구진들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믿고 기다려주어야 한다고도 했지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바로 그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강창구 박사는 창의적인 것은 민주적인 토론보다 때로는 독단적인 추진력에서 나올 때가 많다고 주장했다.

“창의적인 것은 토론과 합의를 거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창의적인 것이 아니지요. 때로는 독단적인 것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반대를 극복해야 정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거죠. 삼성 이건희 회장이 처음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했을 때 모든 이사진이 반대했답니다. 그래도 밀어붙였고, 결국 이루어냈지요. 새로운 것은 결코 모두가 찬성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강창구 박사는 도전정신과 모두의 반대 속에서도 꿋꿋하게 밀고나갈 수 있는 소신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쏠림 현상이 심해서 모두가 한 쪽으로만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수가 반대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단 피하려고 하고요. 하지만 그것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공무원 뿐만 아니라 청년들에게도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 구직자들이 대기업만 원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공채로 사람을 뽑는 것이 거의 어렵다”며 안타까워 했다.

“아들이 우리 회사에 근무합니다. 유학가겠다는 놈을 붙들어 앉혔습니다. 그런데 대기업에 입사했던 아들 친구들이 아들을 부러워한답니다. 돈은 좀 더 많이 받을지 몰라도 회사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없는거죠. 하지만 우리 아들은 세계 최초로 개발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에 대한 자부심도 크고요. 청년들도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소신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과실연에서 시작한 중소기업지원사업에 대해서도 반가워했다. 인력문제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은 홍보나 기타 여러 문제들로 어려운 점이 많다며 “과학기술자들이 상아탑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민들 속으로 파고드는 매우 의미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강 박사는 “위그선을 연구하면서 여러 가지로 과실연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바른 과학기술 사회를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과실연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모험과 도전은 쉽게 이야기하지만, 쉽게 실천하기는 어려운 덕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창구 박사는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며 도전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강창구 박사의 삶 자체가 새로운 교훈이다. 우리 역시 현실에 안주하기보단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한 발 움직여보는 것은 어떨까?

 

이지은 과실연 웹진기자(prayjie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