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 제78차 과실연 아침마당

 

 

[제78차 과실연 아침마당]
- 주제 : 대한민국, 교육문제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나
- 일시 : 2017년 7월24일 오전 7시30분
- 장소 : 광화문 달개비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하 과실연)은 24일 ‘대한민국, 교육문제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아침마당을 개최했다.

이번 아침마당의 발제는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이 맡았으며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안석배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종태 교육을바꾸는 사람 부설 21세기교육연구소장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좌장은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과실연 교육특별위원장)가 맡았다.

교육개혁 문제는 우리 사회의 영원한 숙제임을 증명하듯 7시30분에 시작한 토론회가 세시간을 넘도록 끝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이 날 발제를 맡은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의 발제문을 요약 소개한다.

왜 시험을 바꿔야 하는가

사람들은 교육 문제 앞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교육 문제만큼은 아무리 해도 해결이 힘들다고 자포자기해 있는 것이다. 그간 국가교육 개혁을 위한 노력이나 시도가 없지 않았고 대입제도도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바뀌었지만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사태는 점점 악화됐다.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던 것은 바로 시험, 즉 평가기준이다. 시험에서 어떤 능력을 측정하는지에 따라, 어떤 능력에 고득점을 부여하는지에 따라, 학생들의 공부법, 교사들의 교수법, 교육의 거버넌스 체제, 사교육시장까지 달라진다. 교육 관련 구성원들의 모든 행동 방향을 조종하는 시험, 그 시험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무엇을 바꾸어도 대한민국 교육은 바뀌지 않는다.

2009년 국가교육과정의 첫 번째 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었다. 2015년의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이것이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으로 바뀌었다. 교육과정 목표에 “창의적 인재 양성, 전인적 성장” 등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우리 교육은 이런 목표와 전혀 무관한 엉뚱한 능력들을 길러왔다. 목표와 무관한 평가기준으로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결국 시험이 관건이다.

우리 공교육에서 학생이나 교사를 타박해 보아야 소용없다. 어차피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시험이 수용적 학습과 일방적 수업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탓이다. 학생이 비판적 창의적 학습을 하기를, 교사가 비판적 창의적 수업을 하기를 바란다면 시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히 근본적인 변화, 완전히 새로운 시험이다

새로운 시험의 예시

각국의 대입시험문제를 살펴보면 그 나라가 교육을 통해 무슨 능력을 기르고자 하는지, 어떤 종류의 인재를 기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2017년도 수능의 국어 영역을 보면 총 45개의 문제 중 ‘다음 중 적절한 것은’ 유형이 25개, ‘다음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 유형이 19개였다. 객관식 정답찾기 시험에서 난이도는 질문의 수준이나 깊이로 결정되지 않는다. 문제에 주어진 다섯 개의 보기가 유사할수록 난이도가 높은 문제다. 내신 시험문제들은 더 심각하다. 극도로 지엽적인 정보의 암기력만 측정한다.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사고력을 키워 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와 IGCSE(International Graduate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의 시험문항 예시를 제시한다.(첨부파일 참조)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시험: 대한민국 교육 혁신의 시작

그러나 객관식 시험의 폐지만으로 교육혁명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객관식 시험의 폐지는 교육혁명의 시작이지만 제대로 완성되려면 교육에서 측정하는 평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핵심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시험”을 도입함으로써 대한민국 교육을 개혁하자는 것이다. 시험을 바꾼다는 것은 그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을 바꾸게 됨을 의미하고, 교사의 교수법과 학생의 공부법까지 모두 바뀌게 됨을 포함한다.

이 글에서 제시한 시험혁명은 기존의 우리나라 시험과 양립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예컨대 수능이나 내신에 논술형 시험을 30% 의무화하는 식으로 부분적으로 도입하자 하면, 이것은 기존 교육을 그대로 둔 채 다른 종류의 공부를 추가하는 것밖에 안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이중고를 안기게 되는 일이다. 기존 교육과 양립할 수 없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시험”은 우리 교사들이 전혀 다룰 수 없는 낯선 것이 아니다. 실제로 교육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혁신학교나 대안학교 교사들은 의외로 이런 시험이 낯설지 않음을 인정한다. 다루는 소재는 대동소이하다. 다만 그 소재들을 집어 넣는 것으로 끝날지 그 소재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다른 것을 꺼낼 지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 교육을 바꿔보려는 의지를 가진 많은 개별교사들이 이미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수업 활동들을 시도해 왔다. 교사들에게 국가가 통제해 온 ‘교육권’을 돌려주면 처음에 약간의 혼란은 있겠지만 지속적인 연수와 지원을 통해 얼마 지나지 않아 교사들은 날개를 달 것이다.

객관식 시험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채점의 공정성, 교사의 준비도, 사교육 문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결국 객관식 정답 찾기 시험이라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객관식 정답 찾기 수능과 내신 시험은, 획일화된 교육으로 규모의 경제성을 가능하게 해서 사교육의 기형적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교사들이 스스로 교육과정을 만들고 평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교사의 교육권을 박탈하여 공교육을 무너뜨렸으며, 학생들의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고사시켜서 교실에서 절반 넘게 엎드려 자거나 아니면 안 자고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해도 전혀 세계적인 경쟁력이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점의 공정성, 교사집단의 반발, 사교육계의 저항을 우려하는 목소리 때문에 객관식 수능과 내신을 버리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한국형 바칼로레아식 시험으로 혁신하는 카드는 주저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우려들은 모두 새로운 시험체제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만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생, 교사, 학부모로서 새로운 시험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논술형 시험도 객관식 시험보다 공정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고, 교사들의 준비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며, 사교육의 지형이 바뀔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에 진정 동감한다면, 저항이 있을까 지레 겁 먹지 말자. 가본 적 없는 길이라고 계속 객관식 시험만 붙잡고 있으면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